더운데 비교적 건조한 날씨,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더운 날씨에도 비교적 건조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에어컨 안 틀고도 그럭저럭 버틴다. 아마도 다음 주중부턴 에어컨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타이핑만 해도 더워지므로. 어쩌면 오늘 밤일지도.
날씨와 상관없이 어제는 어딘가 불편했다. 지금은 새로 태어난 수준으로 건강해지긴 했으나 조금 무리하거나 신경을 바짝 쓰게 되면 나타나는 증상이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암수술 전 오래 앓았던, 죽음 같았던 통증의 상흔이라고 부른다.
경험칙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시작된 병을 오래 앓았고, 선행된 스트레스의 근원을 완전히 제거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부조리에 환멸을 느낀 끝에 암이 발견됐다.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사정이며, 당시 느낀 바가 도지지 않게 조심하는 것도 당사자인 내 몫이다.
떫은 감처럼 몹쓸 현실도 쓸모는 있었다. 남들은 살면서 한 번 겪기도 힘든 일들을 약 10년간 집중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에서 숨겨진 자아들이 튀어나와, 때론 그 자아들이 각자의 관점으로 분석한 결과들이 내 글을 다채롭게 만들었으니. 집필 기간이 겹친 건 우연일 뿐, 두 번 겪고 싶진 않다.
수치는 모두 정상이라 뚜렷한 원인과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지라, 무엇보다 완치된 후에도 약을 먹어야 한다면 억울한 느낌이어서, 되도록 수면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어제는 특히 수면 부족인 것 같아서 낮잠을 푹 자고 나니 괜찮아졌다. 밤에도 잠이 온 거 보면 수면 부족이었던 거겠지.
교정교열 1회차 시작도 못한 상태에서 디자인부터 구현 중에 벌써 수면 부족이라니, 생각이 많아진다. 원래는 기간을 더 느슨하게 잡았다. 이제껏 해온 바와 같이 10년 집필하고 생업을 슬슬 재개하면서 추가 10년을 퇴고해서 약 20년 쯤 후에 출간? 노후에 쉬엄쉬엄할 일이었다. 여차하면 안 내고 나만 볼 생각이었다.
전력투구하는 출판 관계자들은 뒷목 잡을 소리겠지만, 나는 내가 뭘 하려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갑자기 암진단과 함께 병이 낫는, 모순적인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계획이 전면 수정된 지금도,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 내 건강보다 중요하진 않다. 이대로면 한 권당 300페이지라고 했을 때 20권이 넘어갈 수도, 그 중 절반 이상을 내보내지 않을 지도 모른다. 투고가 아닌 직접 출판사를 차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다.
중요한 건 내가 재미를 느끼는 가이다. 내 재미의 기준은 보편적이진 않다. 예컨대 티비, 영화, 수다는 내 재미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 집에 티비가 없는 이유다. 반면 남들에게 고역인 게 내겐 재밌을 수도 있다. 예전 일을 할 때 야근을 밥먹듯이 한 것도, 지난 10년간 아무런 경제적 보상없이 하루 평균 10시간 집필한 것도, 각 몇 년씩 매일 대여섯 시간 성경과 법을 탐구한 것도, 내가 재밌어서였다. 틈틈이 환기 차 썼던 여러 단편들, 소설보다 먼저 시작했던 희곡들, 동화들은 지금도 가끔 꺼내 보며 혼자 실실 웃는다. 그러나 강요되거나 평가가 개입되는 순간, 나 혼자만의 검열이라도, 재미는 사라진다.
퇴고를 수년한들 성에 찰까. 몇 교를 한들 완전무결해질까. 물론 오타 없애는 건 최소한의 최선일 것이다. 천 페이지 육박하는 자크 라캉의 중역본에서도 오타를 놓치지 않았을 만큼 나 역시 오타에 민감하다. 인식하는 것일뿐, 거슬렸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번역가의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졌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에 대하여 누군가는 무관용일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인지한다.
하여 내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출간의 기준은, 세상이 성공이라고 부를 만한 몇 쇄 기록, 특정군의 찬사, 몇 개국 수출 등이 아니라, 지독한 환멸 속에서 더욱 소중히 간직한 재미를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듯, 내가 느끼는 재미를 남들에게 강요할 생각도 없다. 오타와 띄어쓰기 등등의 오류에 내성이 없다거나 어느 심사평에서 발견되기도 하는, 고도로 '고고한 안목'을 가지신 분들은 돌아가세요, 이걸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왜 출판사업자 내기는커녕 1교도 안 한 상태에서?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며?
아, 나는 남들의 오타에는 무덤덤해도 내 오타는 못 견디는, 그렇다고 또 오타가 없는 것도 아닌, 지극히 모순적인 인간의 표본인 것이다. 모 문학상에서 작은 상을 받을 때마다 기쁜 마음에 다시 원고를 열어봤을 때 바로 눈에 들어온 오타들이나 비문들을 왜 발견하지 못했는지, 괴로운 마음을 '그럼에도 형식이 아닌 실질을 보고 뽑아준 누군가에 대한 고마움'으로 변환하는 등, 나만의 방식으로 극복하는 속도가 빠를 뿐.
내가 원하는 기준을 맞추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현실이다. 시간이나 에너지 등을 적당히 안배해야 할 시점임을 느낄 때, 나는 창밖을 보거나 냉장고를 열어본다. 전엔 계절이 바뀌어있었다. 재료가 상해있거나. 뭐가 중요하다고 이런 걸 놓치고 있었을까,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다.

이번에도 역시나, 1주일 전 소금물에 삶은 아스파라거스가 아슬아슬했다. 그라탕을 만들겠다며, 에멘탈과 파마산에 이어 급하게 만든 베사멜 소스를 얹은 후 따로 빼둔 아스파라거스로 장식했다.








녹인 버터를 뿌리면 풍미가 더 좋아지겠으나 매번 생략한다. 베사멜에 이미 7g이 들었다. 그마저도 줄인 것이다. 당도, 지방, 완치 전엔 극단적으로 안 먹었다. 지금은 적당히 먹는 모든 재료가 스트레스보다 더 유해하진 않음 역시 내 경험칙이다. 그렇다고 세상이 요구하는 풍미의 기준에 맞출 필요는 없다.
완벽 지향성이 발동할 때마다 나는 내게 묻는다. 이것을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받을 것인가. 이 지경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내 건강을 담보로 감수할 가치가 있는 스트레스인가. 이 두 질문은 병도 모자라서 이런저런 일들로 죽기 일보직전 살아난 내겐 효과가 매우 좋은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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